jhoons' Life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본문
어떤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좋겠다 너는, 글재주가 있어서!”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랬고, 정치를 떠나 문필업으로 돌아온 후에도 같은 말을 듣는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은근히 화가 난다. 이 말이 목젖까지 올라온다.
‘그런 거 아니거든! 나도 열심히 했거든!’ (36쪽)
N년을 이과생으로 살면서, 마땅히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교양 과목 리포트를 쓰는 날이면 답답한 심정으로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대체 이과생한데 글을 왜 쓰라고 하는 건지. 그냥 미분방정식 잘 풀면 되는거 아닌가? 실험하고 보고서 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불평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 학부를 졸업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연구 결과를 정리하는 논문을 쓸 때, 동일한 내용이라도 누가 쓰는가 /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랐다. 최근에 유사한 실험 결과를 보고한 두 그룹이 있었다. 한 그룹은 impact factor (논문 인용 지수)가 1~2 정도 되는 IEEE 계열 저널에 논문을 실었고, 다른 한 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저널인 Nature (impact factor 41)에 논문을 실었다. 둘의 실험내용은 비슷했지만 글의 논리 구성과 스토리 전개가 달랐다. 과학자는 논문 외에도 다양한 글을 쓴다. 연구자금을 따기 위해 쓰는 신청하는 경우에도, 글쓰기 내공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 존경하는 몇몇 선배들은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하고, 과학 교양 서적을 출판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내 글쓰기 실력은 초라하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을 쓰고 말거야' 하는 로망을 품고 있지만, 이를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감이 안 왔다. 자발적으로 글을 쓴 경험도 별로 없고, 막연한 공포심에 키보드 두드리기를 꺼려했다. 이런 처지에 책을 쓰겠다고 하다니, 창피했다. 이런 차에 글쓰기 훈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찾아보다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발견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완전 팬이 되버린 터라,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 책은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훈련법은 두 가지 철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큰 돈을 주고 유명한 작가를 불러 스물네 시간 가정교사로 붙여 놓아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훈련만 한다면 선생님이 없어도 괜찮다. 글쓰기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헬스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아도 실제 몸을 쓰지 않으면 복근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가르침을 받아도 계속 쓰지 않으면 훌륭한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익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45쪽)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면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인이 쓴 것이든 외국 도서를 번역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셋째는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97쪽)
글쓰기의 두 번째 철칙은 '많이 쓰는 것'이다. 저자는 하루에 30분을 쓰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기를 권한다. 다만, 올바른 글이 되도록 '자아비판'을 하며, 혹은 친구들의 평가를 들으며 글쓰기 연습을 해야한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좋은 글'의 기준과 원칙을 설명한다.
어떤 글을 잘 썼다고 (…) 나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쉽게 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동의할 근거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려면 다음 네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 그 주제를 다루는 데 꼭 필요한 사실과 중요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셋째, 그 사실과 정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넷째, 주제와 정보와 논리를 적절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54쪽)
긴 글 보다는 짧은 글쓰기가 어렵다. 짧은 글을 쓰려면 정보와 논리를 압축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압축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 문장을 되도록 짧고 간단하게 쓴다. 둘째, 군더더기를 없앤다. (166쪽)
인생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감정이 여럿 있는데, 허영심도 그중 하나다. 허영심은 아주 고약한 감정이다. 허영심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글 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혀영심은 지식과 전문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사로잡히면 난해한 글을 쓰게 된다. (176쪽)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실천에 돌입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에 책을 읽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2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올리자.'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고 요약했다. 북리뷰를 하며 느끼게 된 작은 변화들이 있다. 우선 책 읽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진다. 워낙 책을 멀리하다가 읽기 시작한 탓도 있을 것 같다. 리딩 속도가 빨라지면서, 독서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었다. 아직은 내공부족으로 발췌/요약 수준의 글을 쓰고 있지만, 점점 글쓰기 공포증이 고쳐졌다. 특히, 글쓰기를 시작하는 첫 문장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글이 자연스레 본론으로 흘러가기 위해 필요한 시작점이 어디일지, 이제는 감이 좀 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는,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제 안중근 의사가 한 말 뜻을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아직은 초보라, 한 3~4일에 한번도 책을 못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정도다. 짧은 기간의 자가 훈련이었지만 책 속 조언의 가치를 확인하기엔 충분했다. 글쓰기의 두 가지 철칙대로, 지금보다 좀 더 많이 읽고 좀 더 많이 써야겠다. 기회가 생기면, 같이 책을 읽고 나누는 모임을 만들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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