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oons' Life
화폐전쟁 - 쑹홍빙 본문
1997년과 2008년. 두번의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했고, 이 두 번의 위기는 나같은 일반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IMF 외환위기 때는 우리집이 말그대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고, 2008년의 금융위기 때는 친한 친구들이 번번히 입사지원에 실패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석사 졸업 후에 취직한 회사에서 만난 한 동기로부터 "여기가 딱 100번째 지원한 곳이야"라는 고백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마 2008년을 기점으로 '구직난', '임금피크제', '3포세대', '세대간 갈등' 같은 무서운 단어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 거대한 흐름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 궁금함에 <화폐전쟁>을 처음 펼쳐봤다. 금융위기가 닥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당시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문외한에 책 읽을 여유도 없어서 몇 페이지 못 읽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 한국을 다녀온 친구를 통해 책을 구해 읽었다. 여태 몰랐던 역사와 작가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고, 200여년간의 역사를 빠른 속도로 전개한 글이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 중앙은행과 통화발행권 ]
18세기 전의 금융은 지금과 달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의 화폐는 금화 그 자체로, 금을 인위적으로 발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통화량도 적어 시장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다. 그러다가 18세기 말, 금세공업자인 골드스미스들에 의해 상황이 서서히 바뀐다. 부자들에게 금화는 은근 골치덩이였다. 금화를 들고다니기도 힘들고, 집에다 보관하자니 도둑이 걱정되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을 골드스미스들의 금고에 보관하고, 금의 보관을 증명하는 금화보관증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그 금화보관증을 금화대신 거래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골드스미스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보관료를 받고 금화를 금고에 넣어두었다. 소소한 이익을 챙기던 골드스미스들은 어느날, 금의 주인들이 평소의 입금액의 10% 정도만을 입출금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 이를 이용해 남은 90%를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 장사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실제 보관중인 금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적힌 보관증을 발행하고 이를 대출해서 엄청난 이자 수익을 거둔다. 골드스미스 손에 '화폐 발행권'이 쥐어지는 순간이다. 그들은 부를 축적하며 은행가로 성장하고, 급기야 영국에서 금을 기초로 화폐를 발행해 국채와 교환하는 중앙은행, <잉글랜드은행>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화폐 발행권이 왜 중요한가? 중앙은행의 소유자는 결론적으로, 채권을 통해 보장되는 세금 징수권을 영구적으로 갖게 된다. 국가로부터 매년 안정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를 소유하는 자가 사실상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다.
잉글랜드 은행의 핵심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개인 채무를 국가의 영구적 채무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잉글랜드 은행이 채무에 기반을 둔 국가화폐를 발행했다. 이렇게 해서 국왕은 전쟁에 필요한 돈을 확보했으며, 정부도 뜻대로 정책을 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은행가들은 그동안 꿈꿔오던 거액의 대출을 해주고 짭짤한 이자 수입을 챙기게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었다. 다만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했다는 점이 옥에 티였다. 이렇게 강력한 새로운 금융 수단이 생기면서 영국 정부의 적자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1670~1685년 영국 정부의 재정 수입은 2480만 파운드였고, 1685-1700년의 정부 수입은 두배 넘게 증가한 5570만 파운드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 은행에서 대출한 액수는 17배나 급증해 80만 파운드에서 1380만 파운드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도는 국가화폐의 발행과 영구적 국채를 묶어 놓는 구조였다. 그래서 화폐를 신규발행하면 국채가 늘어나게 되어 있었다. 국채를 상환하면 국가의 화폐를 폐기하는 셈이 되므로 시중에 유통할 화폐가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영원히 채무를 상환할 수 없다. 이자를 갚고 경제도 발전시켜야 하므로 화폐 수요는 필연적으로 늘어날 테고, 그 돈은 다시 은행에서 빌려와야 했기 대문에 국채는 계속해서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 채무에 대한 이자 수입은 고스란히 은행가의 지갑으로 들어갔으며, 이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했다.
[ 로스차일드 가문의 성장 ]
화폐의 발행, 대출을 통한 이자 수입, 국채 발행을 통한 전쟁, 중앙은행의 설립 등, 금융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에 '메이어 암셀 바우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후에 '로스차일드'로 성을 바꾼 그는 금융재벌의 수장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조가 된다. 1744년, 독일의 골동품상이자 대금업자인 암셀 모세 바우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다이아몬드 독점기업 <드비어스>를 설립한 오펜하이머 가문의 은행에서 수업을 받는다. 청년으로 성장한 메이어는 독일의 윌리엄 왕자와 가까워진 후 그의 자금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한다. 메이어가 돈 버는 전략은 간단하다. 왕의 가문과 친분을 쌓은 뒤, 국가를 상대로 스케일 큰 대부업을 하는 것이다. 그는 제국 왕실 대리인의 칭호를 부여받아 면세권을 누리기도 하고, 덴마크 왕실과 금융거래를 독점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던 어느날, 윌리엄 왕자가 나폴레옹의 위협으로 인해 덴마크로 망명하며 거액 300만달러의 현금을 메이어에게 맡긴다. 손에 들어온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메이어는 다섯 아들을 유럽 각지로 보내 지점을 만들고, 세계를 정복할 초석을 다진다. 첫째인 암셀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본점에 남기고, 둘째 살로몬은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장 총명 아들인 셋째 네이선은 영국의 런던으로, 넷째 칼은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보냈다. 다섯째 제임스는 프랑스의 파리에 파견해 각 지점의 정보를 관리하게 했다.
1815년, 세계는 당시 벌어진 워털루 전투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전투의 결과에 따라 영국의 국채 가격이 급등하거나 내동댕이쳐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 지점을 갖고 있는 로스차일드가는 누구보다 빠르게 영국의 승전소식을 입수한다. 그리고, 영국이 패전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영국 국채를 헐값으로 만든 뒤, 시장에 던져진 매물을 전량 매수했다. 하루 아침에 영국의 국채 대부분을 손에 넣은 로스차일드가는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을 압도하는 힘을 갖게 된다. 영국의 화폐발행과 황금 가격의 결정권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넘어간 것이다.
나는 해가 지지 않는 잉글랜드 제국을 통치하는 왕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통화공급을 통제하는 사람이 곧 대영제국의 통치자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이 후, 로스차일드가는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각국의 경제를 흔들었다. 그 결과 19세기 중반에는 모든 유럽 주요 국가의 통화 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들이 로스차일드가의 것이 된다.
1818년 10월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은 탄탄한 재력을 기반으로 유럽의 각 도시에서 프랑스 국채를 은밀히 사들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채는 조금씩 가격이 올랐다. 그 후 11월 5일부터 그들은 유럽 각지에서 프랑스 국채를 대량 투매하여 시장을 공황에 빠뜨렸다.
제임스 로스차일드의 재산은 6억 프랑에 육박했다. 프랑스에서 개인 재산이 그보다 많은 사람은 8억 프랑을 보유한 국왕 한 사람뿐이었다. 프랑스에 있는 다른 은행가들의 재산을 모두 합쳐도 제임스보다 1억 5,000만 프랑이나 적었다. 이런 재산은 자연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으며, 심지어 언제라도 정부 내각을 쓰러뜨릴 정도였다. 그 유명한 티에르(Thiers) 정부도 그들 손에 실각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현재 주요 서방 선진국의 최대 채권자다. M. A. 로스차일드의 부인 구틀 슈네퍼는 세상을 뜨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들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 전쟁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없어질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 공업국가의 화폐 발행 권리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중에 떨어짐으로써 신성한 군주의 권리가 '신성한 금권'으로 대체되었다.
[ 금융재벌의 미국 점령 : 연방준비위원회 ]
유럽대륙을 점령한 로스차일드가는 이제 미국을 넘본다. 문제는 미국의 법정화폐였다.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금에 기초해 화폐를 찍어내고 있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애덤스미스가 찬사를 보낸 '담보가 없는 화폐'를 찍어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1763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잉글랜드은행의 책임자는 그에게 신대륙 식민지가 어떻게 그토록 발달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원인을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야 간단하죠. 식민지에서 우리는 '식민권'이라는 화폐를 스스로 발행했습니다. 상업과 공업의 필요에 따라 동등한 비율의 화폐를 발행하죠. 그러면 상품이 생산자에서 소비자의 손까지 쉽게 이동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지폐를 만들고 구매력까지 보장하니까, 우리 정부는 누구에게도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새로운 지폐의 출현으로 미 식민지는 필연적으로 잉글랜드 은행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었다.
법정화폐는 대륙 은행가들의 적이었다. 금본위제 하에서 화폐 발행은 정부를 상대로 한 대출과 국채의 확보, 이로부터 발생하는 이자 수입의 연쇄반응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국의 법정화폐는 이 거대한 이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이것이 법정화폐와 금본위제 중앙은행의 싸움이 시작된 이유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 위원회가 설립되기까지 미국인들은 100년이 넘도록 금융재벌들에 저항해 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통령이 암살, 피습 당했고 전쟁과 공황이 발발했다.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미국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이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만약 미국인이 끝까지 민간은행으로 하여금 국가의 화폐 발행을 통제하도록 둔다면, 이들 은행은 먼저 통화 팽창을 이용하고 이어서 통화 긴축 정책으로 국민의 재산을 박탈할 것이다. 이런 행위는 어느 날 아침 그들의 손자들이 자기의 터전과 선조가 개척한 당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미합중국의 위대한 선구자들은 혜안을 자고 역사와 미래를 관찰했다. 그들은 미국 헌법 제1장 제8절 서두에 이렇게 써내려갔다. "의회는 화폐의 제조와 가치설정의 권리를 갖는다."
(남북전쟁의 배후에 관하여) 당시 로스차일드가문과 친분이 두터웠던 독일 수상 비스마르크(암셀 로스차일드의 후계자)의 말은 이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미국을 남부와 북부 두 약세 연방으로 분열시키는 것은 유럽의 금융 세력이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시나리오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링컨은 의회에서 권한을 부여받고 국민에게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와 국가는 외국 금융재벌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 국제 금융재벌들이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미국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링컨의 죽음도 멀지 않았던 것이다.
100년을 끌어온 싸움은 금융재벌의 승리로 마무리 된다. 로스차일드 가문, JP 모건, 카네기, 록펠러 등이 모여 지금의 미연방준비은행 설립한 것이다.
이 법안은 미국 헌법의 분권과 상호 견제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출현했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의회가 심의하며 독립 인사를 이사로 임명하고 은행가가 고문이 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설계였다.
이날 찰스 린드버그 의원은 하원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연방준비 은행법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신용을 부여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법안에서 서명한 순간부터 금권이라는 이 보이지 않는 정부는 합법화될 것입니다. 국민은 당장에야 잘 모르겠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국민은 다시 '독립선언'을 해야 금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금권은 최종적으로 의회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이 의회를 속이지 않으면, 월가는 우리를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국민의 의회를 가졌다면 국민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회가 저지른 최대의 범죄는 바로 화폐 체제 법안인 연방준비 은행법입니다. 이 은행법의 통과는 윌 시대의 가장 악랄한 입법 범죄입니다. 양당의 지도자들이 밀실에서 담합해 국민이 정부로부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앗아간 것입니다."
[ 전략 수정 : 금본위제 폐지 ]
금융재벌은 20세기 들어서며 전략을 수정한다.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법정화폐 체졔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법정화폐는 한정된 황금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정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인플레이션은 조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면 실물 가치가 떨어지므로 금융재벌이 저축자들로부터 쉽게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앞서 법정화폐를 반대한 것과 모순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연방준비위원회의 설립으로 세계 화폐의 발행 주체가 정부에서 금융재벌로 옮겨졌기 때문에 '담보없는' 법정화폐는 금융재벌들에게 더 이상 독이 아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뀐 것이다.
1928년, 케인스의 주장대로 영국의 "화폐와 은행권법안"이 통과되면서, 국채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는 상한선의 한계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화폐 발행과 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미국에서는 루즈벨트의 주도로 개인간 황금의 거래가 금지됐고, 1944년 브레턴 우즈 협정에 따른 달러 환전 시스템으로 황금의 화폐기능이 폐지 되었다. 그리고 1971년 닉슨대통령에 의해 금본위제가 확정적으로 폐지된다.
케인스가 앞장서고 은행재벌이 뒤에서 밀어주며 루스벨트가 행동에 나서 마침내 금본위제를 폐지하자, 그동안 눌려있던 적자재정과 염가화폐라는 쌍둥이 괴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의 권력만 보고 나중에 닥쳐올 결과는 개의치 않은 케인스는 한 마디 명언을 남겼다 "길게 보면 사람은 어차피 다 죽게 되어있다."
[ 다음 작전은? 제 3세계 착취 ]
1944년, 브래턴우즈 협정에서 44개 연합국은 IMF와 IBRD의 설립을 결정했다. 이들은 경제적 위기를 겪는 국가나 미개발 국가에 차관을 제공하는 기구이다. 겉보기엔 세계 경제의 발전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의 기구이지만, 사실 제3세계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금융재벌의 야욕은 그 차관의 제공과 상환의 과정에서 교묘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IBRD의 부총재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의해 증언된다.
스티글리츠는 모든 나라에 같은 처방이 기다리고 있다고 토로한다. 첫번째 처방은 사유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뇌물화'다. 지원 대상국의 지도자가 국유자산을 싼값으로 다른 나라에 양도하겠다고 동의만 하면 즉석에서 10%의 사례비가 스위스은행의 기밀계좌로 입금된다. 스티글리츠의 말을 빌리면 "그들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거액인 수십억 달러를 대출 받을 수 있다. 1995년 러시아 사유화의 과정에서 역사상 최대의 뇌물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미국 재무장관은 말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나하면 우리는 보리스 옐친의 당선을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패선거라는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옐친에게 돈을 쏟아부으려 했다."
... 두번째 처방은 자본시장의 자유화다. 이론적으로 자본의 자유화는 자본이 자유롭게 유입되고 유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시아나 브라질의 금융위기 경험에 비춰볼 때 자본의 자유로운 유입은 필연적으로 부동산과 증시 및 환율시장의 투기로 이어진다. 그러다 위기가 다가오면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만 반복된다. 스티글리츠가 '핫머니'라고 칭한 단기성 투기자금은 늘 제일 먼저 빠져나가므로 위기를 맞은 나라의 외환 보유액은 며칠이나 심지어 몇 시간 안에 동이 난다. IMF가 구조의 손을 내미는 조건에는 통화긴축으로 금리를 30%, 50%, 80%까지 황당할 정도로 올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고금리는 부동산 가치를 무참하게 무너뜨리고 공업 생산성을 파괴해 오랜 오랜 기간 축적된 사회의 부를 순식간에 쓸어간다.
세 번째 처방은 시장가격 정하기다. 경제위기를 맞아 기진맥진한 나라에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되면, IMF는 다시 식품이나 생수 및 천연가스 등 일반 서민의 생활 필수품 가격을 대폭 인상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수많은 시민이 시위에 나서거나 폭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는 IMF가 식료품과 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했다는 이유로 대규모 폭동사태가 일어났다. 볼리비아는 물 값 상승으로 시민 폭동이 일어났고 에콰도르는 천연가스 가격의 폭등이 사회 혼란을 가져왔다. 이 모든 것이 국제 금융재벌들의 계산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용어로 말하면 '사회적 불안'이다. 그런데 사회적 불안은 매우 훌륭한 역할을 했다. 마치 놀란 새 무리처럼 자금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면 극히 저렴한 가격의 자산이 오랫동안 침을 흘리고 있던 국제 금융재벌들의 큰 입속으로 들어간다.
... 네번째 처방은 빈곤을 줄이는 책략인 자유무역이다. 스티글리츠는 WTO의 자유무역 조항을 '아편전쟁'에 비유했다. 그는 특히 '지적재산권' 조항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토록 높은 '지적재산권'과 '관세'로 서방 국가의 '제약회사' 생산한 약품값을 지급하라는 것은 상대 국민더러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국민이 죽고사는데 아예 관심도 없다.
2004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경제저격수의 고백>의 저자 존 퍼킨스도 스티글리츠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존퍼킨스의 업무는 개발도상국에 IBRD의 차관을 얻도록 로비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책정해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했다. 개발도상국 정치 지도자의 구미를 돋우기 위해 수억달러의 뇌물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채무를 갚지못하면 IBRD와 IMF가 국제 금융재벌들을 대신해 '선혈이 낭자한 고깃덩어리'인 체납금을 독촉한다. 이때 내거는 조건이 상수도 공급 시스템, 천연가스, 전력, 교통, 통신산업 등의 핵심 자산을 양도하라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다. 스티글리츠의 증언이 맞다면 97년 IMF위기 때, 한국 경제가 겪었던 어려움들은 한국경제 관제탑의 오작동이 아니라, 국제금융재벌이 정해놓은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공공재가 사유화되고 외국자본에 넘어갔으며,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맘이 든다. 사람들이 농담삼아 '한국은 외국자본의 ATM'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런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다니.
[글맺음]
<화폐전쟁>에는 이 외에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제1차-제2차 세계 대전의 배후, 일본의 몰락, 중국의 부상과 과제 등등. 특히 히틀러를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원했다는 주장을 하는 부분은 비약이 심하지 않았나 싶다. 금융과 경제학에 대해서 잘 몰라서 비판적으로 검증할 역량이 없었던 만큼 저자가 주장하는 음모론, 즉 '세계가 로스차일드가문의 마음대로 좌우된다'는 주장은 걸러 읽으려고 노력했다. 저자에 의하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오로지 중앙은행의 금리와 통화발행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 처럼 서술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교차에 따른 경제 순환 이론을 무시할 수 없다. 남북전쟁, 세계 1차, 2차 대전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철저하고 잔인한 금융재벌이 왜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링컨을 암살한 건가. 링컨을 미리 죽였으면 남북전쟁에서 본 큰 손해를 면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또, 일반적으로 세계 대전은 산업혁명 이후 공급과잉을 주체하지 못해 발생하는 공황에 대한 대처로 해석된다. 식민지 정복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던 제국주의 시대가 마무리되면서 벌어진 사건인 것이다. 오로지 금융재벌의 이익을 위한 전쟁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사건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화폐전쟁의 음모론은 여러 면에서 비판가능하다. 하지만, 국제금융세력들이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의 경제를 좋게 말하면 ATM화, 나쁘게 말하면 가축화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금융세력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강자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어떤 식을 대처해 갈지도 궁금해진다. <화폐전쟁>은 역사적 진실과, 합리적인 추측, 그리고 정도를 넘어선 억측이 혼재되어있는 책이다. 그런 이유로 책장을 덮고 나서 '정말 그럴까?' '다른 경제학자들은 금융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호기심이 일었고, 조만간 정통적인 경제이론에 입각한 금융의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 결국 진실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덧. 아래에 EBS의 다큐멘터리인 <자본주의 제1부, 돈은 빚이다> Youtube 영상을 링크해두었다.
중앙은행 통화발행의 역사와, 그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영상이라 끌어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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