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던 시기엔 휴식의 의미가 명확했다. 선과 악만큼 일과 휴식의 구분은 명료하다. 회사 안인지 밖인지, 그리고 밖에 있더라도 회사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지 -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런 물리적이고 저차원적인 구분이 가능한 이유는 일이 나의 행복과 동떨어진 의무라는 생각 때문인듯 하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그 정의를 내 머리 뿐 아니라, 내 몸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전쟁같은 일과를 보낼 땐 그렇게 아프던 몸이, 금요일 저녁,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주말을 맞이할 땐 그렇게 날래고 가벼울 수가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엔 토요일 특근을 하면 평균 일당의 두배를 받을 수 있는 초과근무수당 제도가 있었다. 하루 8시간의 널널한 근무시간을 마치고 전산시스템의 근무완료 버튼을 누르면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꽤나 짭짤한 수입원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7시간 30분을 일하고 남은 30분만 버티면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두통은 심해지고 호흡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죽을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 젊은 나이에 과로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뛰쳐나왔고, 같이 일하던 동료는 30분을 남기고 놓쳐버린 나의 근무수당에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뛰쳐나온 나는 응급실을 가야할 것 같은 고통을 안고 어이없게도 피시방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낙성대 피시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단 소식을 듣고, 가서 인사만 하고 집에가서 쉬어야겠단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허름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피시방에 들어가서 '리그오브레전드'의 플레잉 화면을 보는 순간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로 심히던- 고통이 사라졌다. 고통은 사라졌고, 울렁거리던 속은 진정되었다. 궁수 캐릭터인 '애시'로 상대편의 킬을 따낸 순간 컨디션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10만원이 넘는 수당을 버리고 얻은 킬이었다. 이 날은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요한 날이다. 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졌다. 다시 시작하게 된 학생으로서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일과 휴식의 차이를 구분짓는게 쉽지 않다. 예전의 일은 '남이 시킨 힘들고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작업'이 었다면, 지금의 일은 '내가 나 자신에 명령한 것'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하고,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제 일은 더이상 악이 아니다. 이제 일은 선하고도 선한 것이다.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는 일이 이런 좋은 것이란 점에서 보람차고 행복하다. 역시 다시 학생이 되기로 한건 잘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휴식'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닐 때 '불금'이 주던 기쁨은 체험하기 힘들다. 공부를 하기로 한 시간을 다 채우고 나면 '와~ 공부를 마쳤다~ 오예~' 이런 식의 환호성 보단, '음... 좀 부족한가? 좀 더 하는게 좋으려나? 좀 전에 보던 논문이 재미있긴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루 일과가 애매하게 끝난다. 그리고, 이렇게 일과 휴식의 연속성 때문일까, 놀아도 논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자주 든다. 그리고 이런 심적 피로감의 축적은 몰입하는 힘을 서서히 줄인다. 그러다가 책을 봐도 그닥 - 놀아도 그닥- 이런 애매한 기간을 겪게 된다.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에게 '휴식'이란 무엇일까. 위의 세 문단을 적고나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벗어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일과 휴식의 차이를 몰입과 벗어남의 차이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리그오브레전드나 연애 같은 대표적인 여가활동도 상당한 몰입을 요구한단 점에서 좀 더 적절한 표현을 찾아보자면, '마땅히 해야할 일에 대한 몰입' 과 '의무에서 벗어난 일에 대한 몰입'이 아닐까 싶다. '의무에서 벗어난'이란 말은 '자유'과 바꿔 쓸 수 있겠다. 결국 일과 휴식은 '목적성을 갖는 몰입'과 '자유로운 몰입'으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뇌과학의 권위자인(진짜 어마어마한 분이다) Terry Sejnowski 교수의 Learn how to learn 이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강의 링크) 여기서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 중 '사고 모드'란 개념이 있었다. 사람은 두가지 방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첫번째는 'Focused mode(집중모드)'이고, 두번째는 'Diffuse mode(확산모드)'이다.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일을 할 때 특정한 논리나 패턴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를 집중 모드라고 한다. 이에 반해, 기존에 형성되어있는 사고의 덩어리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고하는 과정을 확산 모드라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들이 그 예로, 우리가 '천재성'이라고 부르는 예외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생각들은 이 확산모드를 통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은 위에서 재정의된 일과 휴식, 즉 '목적성을 갖는 몰입'과 '자유로운 몰입'으로 일대일 대응할 수 있어 보인다. 지식노동자의 '일'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어 집중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집중모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편, 휴식은 사고 범위에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확산모드에 대응 시킬 수 있다.
집중모드와 확산모드이 대한 감을 좀 더 가져보자. 우리 머리 속에 하나의 개념,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럼 우리 머리를 하나의 도시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의 머리 속은 아마도 '물리학 빌딩', '반도체 백화점', '철학의 연립주택', '음악의 분수', '수학의 정원' 같은 것들로 차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시의 관리자로서 각 건물과 구조물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각종 자재들을 구해와 못질을 해야할 것이다. 하나의 건물 안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그 내부를 치밀하고 견고하게 모니터링 하고 보수해야한다. 이것은 우리가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논리를 구성하고, 혹은 학생으로서 학습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서론 본론 결론을 읽고 소화해나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진 사고.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통 '공부한다'라고 여기는 사고 과정에 해당한다. 흔히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비결을 집중력으로 꼽는만큼 이미 잘 알려져있는 사고 방식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건물을 잘 지어두면 무슨 소용인가. 이 도시는 왜 지은 것인가. 많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 세워진 빌딩들, 멋진 추억을 통해 세워진 정원과 쉼터를 누려야하지 않겠는가. 따뜻한 커피 한잔들고 각고의 노력으로 세운 '자아도시'를 돌아보는 여유를 누려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면 건축물들 사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장면 - 길가에 핀 장미꽃 한송이-를 발견할 수 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 못했던 지름길을 발견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감사하게도 사유를 통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사고 방식을 확산모드(diffuse mode)라고 한다. 확산 모드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는 '무작위성'이다. 사고의 끝에 특정한 명제나 결론에 도달하기 바래선 안된다. 오로지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발끝을 바라보고 앞길을 정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예상치도 못했던 지점에 다다르게 되고,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장면을 만나게 된다.
Brownian motion을 하는 하나의 분자처럼 움직여야 한다. 집중모드와 확산모드의 차이는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서도 볼 수 있다. 관광은 가이드가 정해둔 최적의 코스를 통해 예상가능한 즐거움을 체험하는 상품이다. 유학을 온지 얼마 안되 옐로스톤을 관광사를 통해 간 일이 있다. 옐로스톤의 역사와 즐길 거리, 먹거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베테랑 가이드 할아버지의 인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동해야하는 점이었다. Lower Falls라고 하는 폭포가 있는데, 그 곳에 갔을 때 마치 신의 세계에 입장한 것만 같았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을 가르는 폭포를 볼 때, 그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바보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 할아버지 왈 '일정이 밀렸으니 10분후 출발하겠습니다!!'. 2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에 반해 여행은 순간순간 방향을 결정하고, 새로운 사람, 기대치 않았던 멋진 풍경을 경험하며 삶의 기쁨을 느끼는 과정이다. 존경하는 한 친구는 어느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에 며칠 휴가를 내고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준비한 것은 가방하나. 스위스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현지인들에게 물어 식당을 정하고, 차표를 잃어버리는 위기에도 꿋꿋이 도시를 여행하고 우연히 발견해낸 멋진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냈고, 스위스인들과 짧은 대화도 용케 해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때 얘기를 꺼낼 때의 친구는 빛이 났고, 글로 옮긴 그 여행의 체험기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삶의 예측불가성은 다루기 힘든 어려운 것이지만, 그 뒤에 큰 기쁨을 가져다 주기에 축복이다. 그리고 다행인 점은, 우리는 생각과 행동만으로 그런 여행을 해낼 수 있다. '나'라는 세계의 여행을. 그것도 공짜로.
위의 글을 통해 일과의 구분으로서의 휴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 휴식이란 것이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Diffuse mode thinking 에 유사하지 않은가란 가설도 던져보았다. 이쯤에서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휴식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선 '운동'은 diffuse mode thinking의 좋은 방아쇠가 된다. 운동은 매 순간 발생하는 예외적 사건들에 대한 신체적 대응과정이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풍경도 보이고, 돌뿌리가 나타나면 무사히 이를 피해야한다. 안 움직이던 몸을 이용하는 것 그 자체가 내 자아세계를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축구나 야구같은 스포츠도 얼필보면 강력한 목적동기를 가진 행위로 보이나,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사실 일어나는 일은 '이리저리 튕기는 공을(혹은 메시를) 쫓아 달리기'와 같은 순간적 반응의 연속이다. 하지만, 격렬한 운동은 다치기 쉬우므로 조심하자.
'수다'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토론'이 아닌 '수다'. 수다의 핵심은 핵심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각자 자기의 사고과정을 상대에게 내비친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든다면 환한 웃음이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까딱하다간 상대가 정색하는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으니 일종의 스포츠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수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해야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아닌 '동료'와의 대화는 수다가 아닌 '토론'이나 '회의'정도가 될테니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여야 한다. 아주 친한 직장동료, 랩동료와 일요일 저녁을 같이 보내는건 그냥 즐겁게 일한 것에 불과하다. 그 대화가 수다였는지 회의였는지는 월요병의 정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목이 없는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제목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글을 쓸지 모른다. 제목이 없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 글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서 다 쓰고나면 붙일만한 제목이 정해진다. (사실 이 글도 그렇게 쓰였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글을 쓰는 동안,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점이다. 추상적인 표현의 글은 건물의 외관만 찍힌 사진에 불과하다. 미술관에 들어갔으면 그 안에 걸린 그림을 볼 일이지, '아 미술관이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만족하고 출구로 향해선 안될 일이다. '휴식으로서의 글쓰기'의 원칙을 덧붙이자면, 글의 일관성에 대한 압박감을 줄여야한다. 쓰다보면 어디론가 방향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온 세상만사를 다루게 될 수 도 있다. 이것이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휴식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음이 가는대로 쓸 것.
게임은 어떨까.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완전 새로운 세계. 이는 지금의 세계를 잊게 하여 그 시름을 달래는 기능도 있을 것이고, 현실을 뒤튼 공간 안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할 수 도 있다. 멋지게 몬스터를 처치함으로서 상상에서만 가능한 환타지를 채우는 기능도 있을 것이다. 짜증나는 부장이나 교수를 상상하며 괴물을 때려 죽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안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아니어서, 게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고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다만, 게임이 아주 멋진 스토리를 갖고 있거나, 친한 친구와의 소통도구라면 어느정도의 가치 있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요즘에 주로 즐기는 휴식 방법은 독서다. 다양한 분야, 특히 과학과 동떨어져있으면서 이런저런 교양 지식, 역사이야기, 등을 다루는 책을 읽다보면 '휴가'나온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하는 공부와의 연계점들이 떠오르며 내 삶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을 보며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은 지난 수천년의 문명을 통해 변화해온 세계 속에서 자라왔고, 지금 내 구체적인 일을 통해 세계에 영향을 주려애쓰는 존재다.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즐기기 위해선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확장된 자아세계는 다음번의 자아여행을 더 신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덧. 이 휴식에 대한 글은 '휴식할 목적'으로 쓰였으로 따로 결론을 짓지거나 정리해내지 않으려고 한다. '휴식에 대한 서론-본론-아님말고' 정도의 구조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스스로 칭찬할만한 휴식을 취한 것 같으니 말이다.